[tube p=”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다정하게 관계 맺기
PPS (print print shop)의 EP [복순투어]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북아현동의 어느 재개발 임대아파트다. 재개발로 쫓겨난 이들이 돌아와 살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공급하는 거주지다. 나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북아현동 반지하 방에서 살다 쫓겨났다. 이후 이태원에서 머물다, 2016년에 살던 곳을 허물고 지은 임대아파트 17층에 들어와 살고 있다. 내가 거주하는 곳은 재개발 이후 자리한 아파트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이사 온 후 기존의 공간이 지워지고 다른 브랜드의 아파트가 하나둘 생기는 걸 지켜봤다. 길 건너편은 아직 재개발 협상 중이다. 그곳엔 내가 북아현동에 처음 왔을 때의 시간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내게 북아현동은 2006년부터 2023년까지 다양한 시간의 레이어가 중첩된 공간이다. 어떤 시간은 전의 시간을 무너뜨린 후 새로 만들어졌고, 어떤 시간은 과정으로 남았다.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시간도 있다. 내게 북아현동은 2006년부터 2009년, 2016년부터 2023년. 총 10년이 넘는 시간이 불균질하게 연결되어 있는 장소다.

PPS의 작업 [복순투어]는 1958년 부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 거주 중인 진복순의 사진 앨범에서 시작한다. 2021년 부여로 향한 PPS의 김소라는 접점이 없던 진복순이라는 이의 낯선 사진을 통해 그가 살아온 부여라는 공간을 추적한다. 이제 우리는 공간을 인식하는 감각을 상당수 스마트폰에 위임한다. 직접 모든 감각을 동원해 공간을 느끼고 거기에서 다음 장소로 넘어가는 대신 내비게이터와 지도 앱이 작동하는 화면을 바라보며 게임 플레이어처럼 공간을 걷는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사진 앱으로 공간을 기록하고 떠난다. 우리의 투어는 데이터에 의존해 경험하고 이는 다시 납작한 데이터로 기록하는 일이다. [복순투어]는 역으로 사진에서 시작해 공간을 찾고 그사이의 시간을 훑는다. 여기서 생겨난 감각은 새로운 감각일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일까.

PPS는 전작 [사진 동굴]을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래된 필름 사진을 바탕으로 2020년 경주를 방문해 지금과 같은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거기에는 상실과 그리움의 감정이 각 요소를 관통하는 레이어가 되었을 것이다. 진복순은 PPS와 아무런 접점 없는 인물이다. 어려웠을 거로 생각했던 섭외는 오래전부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길 기다린 듯 어렵지 않았고, 진복순은 낯선 이에게 선뜻 작업을 위해 사진을 내준다. 이를 바탕으로 PPS는 고고학자처럼 사진의 장소를 찾고 거기서 사진의 포즈를 따라 했다. 진복순이 과거 경험하고 사진으로 남겨둔 기록이 시간의 풍화를 겪은 공간에서 다시 태어났다.

흔히 레트로를 재현이라 표현한다. 낡고 닳은 과거의 것을 끄집어낸 후 다시 그것을 흉내 내는 일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것은 과거의 방식 그대로 재현해야 할까. 아니면 결과물만 과거의 것과 유사하게 나온다면 방식은 상관없는 걸까. 우리가 재현하려는 과거의 것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시간에 있을까, 존재 자체에 있을까. 우리가 재현하고 싶어하는 과거는 원본일까. 아니면 낡고 닳아 형태가 변한 빈티지일까.

[복순투어] 작업의 일부인 EP [복순투어]는 PPS의 작업을 음악으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부여에서 방문한 지역을 제목으로 만들어진 곡은 오래된 장소에 이야기와 사운드를 덧씌운다. 낡은 신스 사운드, 단정한 멜로디의 노래, 싸이키델릭한 기타 사운드로 표현되는 [복순투어]의 음악은 요즘의 것은 아니다. 진복순이 제목의 공간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BGM이 있었다면 이런 곡이 흘렀을 것 같다. 기존의 레트로가 수단으로 재현을 이용한다면 [복순투어] EP의 레트로는 사진과 공간을 매개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사이를 관찰하고 탐구하며 관계 맺는다. 다양한 색의 셀로판지를 겹쳐 또 다른 색을 만드는 것처럼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다.

현실 세계는 x와 y축으로 구성된 3차원의 공간과 z축의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네 인생은 이를 바탕으로 일직선처럼 흐르는 것 같지만 불균질한 형태의 북아현동처럼 구불구불한 선이 마구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임사체험한 이들은 공통으로 자신이 어디에도, 어느 시간에도 존재하며 우주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경험을 했다고 전한다. 나뉘어진 공간과 흐르는 시간은 현실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의 축이고 그를 초월한 인식 세계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복순투어]도 그와 비슷한 경험일지 모르겠다. PPS는 진복순이라는 인물, 사진이라는 매개, 부여라는 공간 사이의 촘촘한 레이어 사이로 새로운 레이어를 쌓고 전에 존재할 수 없던 사이를 연결한다. 투어를 돌며 우리는 진복순과 연결되어 있고, 때론 진복순이 된 것 같은 감각을 느낄 것이다. 투어를 마친 후 나는 그 감각에 ‘다정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글 / 하박국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 대표)

[Credit]

프로듀싱 _ 유지완
공동 프로듀싱 _ 단편선@오소리웍스
작사 _ 김소라(1-4), 유지완(1, 2, 4)
작곡 _ 유지완(1, 2, 4), 유태관(1), 단편선(3)
편곡 _ 유지완(1, 2, 4), 단편선(3)

레코딩 _ 천학주@머쉬룸레코딩스튜디오, 유지완+단편선@프린트프린트샵, 유태관, 한인집
믹싱, 마스터링 _ 천학주

드럼 _ 한인집
콘트라베이스, 일렉트릭 베이스 _ 정수민
일렉트릭 기타 _ 유태관
키보드, 오르간, 신서사이저, 프로그래밍 _ 유지완(1, 2, 4), 단편선(3)
노래 _ 김소라, 시와(2), 유지완(4)

제작 _ PPS, 오소리웍스
음원 유통 _ 미러볼뮤직

사진, 디자인 _ 김소라
비디오 _ 조윤지(1), 김소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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